
<디케의 눈>, 금태섭
-제삼자에게 객관적 진실이란 과연 있을까? 나는 내가 '라쇼몽'에 등장하는 나무꾼과 같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내가 나무꾼일까? 그리고 과연 나무꾼의 말은 진실일까?
-부장 검사들이 새로 임관한 검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건과 관계없는 사소한 일들을 묻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피의자가 다니는 회사의 주소가 어디냐는 둥, 형제가 몇 명이냐는 둥 물어본 다음에 대답을 잘하지 못하면 기록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하는 식이다.
-"사실은 말이죠. 버너 장사가 물을 끓이고 있었는데, 그 물이 저한테 뜨겁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물을 버너 장사에게 부어버렸어요." 그 때 교도관이 뽑아준 커피가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얼른 치워버렸다. 만약 커피가 뜨겁다고 말을 걸면 나한테 부어버리지 않겠는가?
-로젠버그 부부가 사형을 당한 지 40년이 넘게 지난 1995년,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은 베노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서류를 공개했다....로젠버그가 유죄라는 증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90년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자서전이 그의 사후 20년 만에 출간되었다. 흐루시초프는 여기에서 로젠버그 부부를 지칭하면서 "그들은 우리가 원자폭탄의 개발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짧은 동영상(두순자 가게 CCTV동영상)이야말로 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보아야 할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재구송되는 사건의 모습과 실제로 벌어진 일이 얼마나 차이가 아는지,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인지 실감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순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형벌은 개인에 대한 것이지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튼이 나이트클럽에 놀러 가던 길이라고 해서 신호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잠깐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리스 힐튼의 변호인은 필사적으로 그런 사실을 재판에서 공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바로 배심재판 때문이다....미국 로스쿨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증거법 교과서 중 하나를 보면 제일 첫 번째 나오는 제목이 '왜 증거법이 있어야 하는가'이고 그 이유로 배심원들에 대한 불신을 들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재판이 열리기 전 수사단계에서 변호인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그러나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말한다. "수사과정에서 자백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그 단계야말로 변호인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따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자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단계에서만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것이 될 뿐이다"
-법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주로 강권통치나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여러 번 행해졌지만 사회변화나 문화현상까지 규제하려는 법률만능주의는 한 번도 성공한 일이 없다. 지금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이나 아직도 성업 중인 많은 보신탕집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 음란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들 중에서 수십 년이 흐른 후에는 칭송받는 예술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발언을 한 사람은 포터 스튜어트라는 미국 연방대법관이다. <연인들>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를 상영한 죄로 벌금 2500달러를 선고받은 사건에 대한 판결문에서 그는 "(음란물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걸 보면 안다 I know it when I see it."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셰익스피어나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처벌하란 말이냐고 핏대를 높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문학이나 미술작품, 영화와 포르노는 분명히 구별할 수 있다. 그 구별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고집스럽게 묻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보면 안다."
-실제로 대법원에 가는 사건을 걸러내는 상고허가제라는 걸 만든 일이 있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1980년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위원장으로 있던 국보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법원에 가는 사건을 제한하려고 하면 당장 권의주의 시대의 발상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정말 이 생각만 하면 전두환이 더 미워진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정말 대법원에서 1년에 2만 건을 처리하는 게 서민을 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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